영화의 도입부, 위청의 독백에 불연 듯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어쩌면, 나 또한 바로 그 코끼리를 찾아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저는, 영화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 (An elephant sitting still) 속 인물들의 여정을 자연스레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영화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 영화 정보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73557
이 영화에는, 칭찬이 아깝지 않은 많은 매력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극 전체를 이끌어가며 생동감과 설득력을 부여하는 웨이부 역의 ‘펑유창’ (Peng Yuchang) 을 비롯한 연기자들의 호연과, 적절한 음악과 같은 영화의 많은 요소들이 모두 각자의 매력을 뽐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장장 4시간에 이르는 이 한 편의 영화에 제가 몰입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영화적 문법으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날 것의 감독이 차근히 쌓아간 (아마도 치열했을, 자신의 문법을 재확인하며 이루어냈을) 세 시간의 이야기가 가진 매력 때문입니다. (이후 한 시간 가량에 대해서는 기회가 된다면 –제가 게으르지 않다면- 따로 나누어보고 싶습니다.)
총 4시간의 러닝 타임 중, 약 세 시간의 이야기는 코끼리를 찾아 떠나려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때로는 아주 유기적으로 때로는 매우 단정적으로 그려냅니다. 각 인물들은, 오늘날 중국 그리고 사실 세상 어느 곳에라도 존재하는 어떠한 부조리하거나 불합리한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여보려 하거나, 갈 곳을 잃어 헤매이거나, 자신의 결핍을 외부에 기대어 풀어내려 하거나, 그저 남은 무언가를 지키거나 자연스레 떠나보내려 합니다.
영화 '산이 울다' 영화 정보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43357
재미나게도, 저는 이 영화를 보며, 제가 본 거의 유일한 중국 신예감독의 영화인 ‘산이 울다’가 떠올랐습니다. 영화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의 도시는 영화 ‘산이 울다’의 두 주인공이 존재하던 산골마을을 닮아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 그 두 공간은, 서로 다른 어느 한 시점의 ‘중국’일 것입니다. 순수한 두 주인공의 순애보와 선택 그리고 (한국으로 치면 한으로 등치할 수 있을) 삭힘이 담겨 있는 ‘산이 울다’의 이야기는, 보다 복잡한 오늘의 중국 내에 속한 네 인물의 치열하거나 헤메이거나 꿈틀대거나 포기해가는 인물들의 사연과 선택 그리고 바람으로 확장된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의 이야기로 이어져 내려온 듯합니다. 그리고 결말에서 영화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는 ‘산이 울다’에서보다 더 넓게 펼쳐진 틈을 내보입니다.
영화 ‘코끼리는 그곳이 있어’의 네 주인공은 각자의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게 된 세상에, 어쩌면 자신에게 위안이 될 ‘코끼리’를 마주 할 수 있는 만저우리를 꿈꾸게 됩니다. 그러나 네 인물들에게는 각자의 다른 ‘이유’와 ‘시기’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와 ‘시기’로 인해, 한 인물은 그 여정에서 Drop out (중도탈락) 되고, 또 다른 인물은 그 여정에 누군가를 합류시키기 하고 반대로 여정의 포기를 망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분기점에서, 영화는 다소 흔들리게 됩니다. 약 세 시간동안 쌓아온 그들의 ‘판타지’는 마치 급변침하는 배와 같이, 다소 어색한 ‘현실’로 이어지며, 어쩌면 감독이 이 지점에서 의도했거나 본인이 마주 했던 (영화적이며 현실적인) 한계를 내보입니다. 이런 작위적이거나 평면적이거나 진부한 현실은, 그러나, 이제 본격적으로 코끼리를 찾아 나선 ‘그들’의 시간과 그러한 그들 앞에 올려 퍼진 무언가의 ‘울음’으로 ‘생의 그 어떤 울림’으로 이어지며, 고난(아마도)의 삶에 가부좌를 튼 우리내 마음에 작은 위안을 남깁니다.
어쩌면 이 리뷰가 영화 ‘코끼리는 이곳에 있다’에 대한 저의 마지막 리뷰일 것을 미리 염려하며, 한 걸음만 더, 세 시간 이후 찾아온 변곡점에서의 인물들의 선택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아래 문단은, 앞서 다른 리뷰를 통해 전해드리고 했던 마지막 1시간에 대한 '진짜' 스포일러입니다.)
친구 아내와의 불륜으로 친구를 죽게 한 ‘위청’은, 헤매이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그는 웨이부와의 선문답에서 깨우치고 ‘하게’ 됩니다. 그 시점에 그의 ‘코끼리를 향한 여정’이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이 다니던 학교 선생과의 불륜 동영상이 폭로된 ‘황링’은, 기대어 존재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그녀는 이제 누군가에게가 아닌 자신의 여정을 위해 ‘코끼리를 향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자신의 딸과 사위에게는 짐처럼 되어버린, 그런 자신을 따르는 강아지를 잃은 ‘왕진’은, 포기해나가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그는, 그러나, 그의 ‘끝나지 않은 여정’ 그리고 ‘이어질 여정을 위한 희망’을 품에 안기로 결심합니다. 끝으로, 위태로운 순간에도 신의를 지키려 했던 ‘웨이부’는, 앞선 모든 인물들을 만나며 울리며 자신의 어린 치기와도 같은 (그러나 세상에 꼭 필요한) 치열함을 ‘함께 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하는 여정’으로 이어냅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제일 먼저, 영화의 급변침이 주는 어색함이 잠시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명백히 구분된 3:1의 시간이 주는 판타지와 현실의 구분, 그리고 생동감 넘치나 고통이던 시간과 다소 생기를 잃었으나 무언가 흐르기 시작한 시간의 구분이 주는, 위안, 그리도 만나고자 했던 ‘코끼리’의 가부좌를 마주했을 때 가질 수 있었을 아주 작고 희미하지만 울림이 있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아주 미묘하게 말입니다.
이 영화의 감독인 후보(Hu Bo, 1988-2017)는, 자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를 세상에 선보이고 자살로 자신의 삶을 안타깝게 마쳤습니다. 이제 서른 중반이 된 저에게, ‘천재’란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존재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답습하거나, 회피하거나, 거짓된 성공은, ‘승자’가 될 수는 있으나 ‘생’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천재들은 그 ‘생’이 되기 전 대개는 급변침의 지점을 견디지 못하고 (또는 스스로 뛰어든 불에 입은 화상에 못 견뎌) 급히 사그라드는 경우들을 작품과 비보로 접하며 ‘어쩌면 ‘생’보다는 ‘승자’가 더 알찬 것 일수도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도 됩니다. 하지만, 역시 아닌가 봅니다. 적어도 저의 세상에선, 아직은, ’생‘이 주는 가치를, 그 삶이 아무리 짧았다 해도, ’승자‘가 주는 가치보다 바라고 또 기대하고 싶다는 생각이, 이 영화를 보니 다시금 들었습니다. (이 문단은 그냥, 개인적인 넋두리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영화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는 짜여진 영화가 아닌 생동하는 예술이 줄 수 있는 가치를, 감독이 경험한 중국 사회 또는 체제에 놓고, 치열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그려낸 영화입니다. 비록 그 결말이 미완처럼 보일 수 있을지라도, 그 미완에 담긴 어떠한 지점이 분명히 ‘생’에 대해 포기하지 않고 부딪힌 자가 그려낼 수 있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 있고 감내해 경험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장 네 시간의 러닝 타임은 사실상 러닝 타임과 그로 인한 상영 횟수 제한이 수익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멀티플렉스 극장에서는 (당연히) 상영되기 어려웠고, 그렇기에 저 역시 대단히 어렵게 이 영화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정말 다행히도, 어제 상영 이후로, 올해 말까지 이 영화에 대한 몇 번 안 되지만 상영의 기회와 심지어 GV의 기회가 생겼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https://instagram.com/eyem_2020). 혹시라도 이 리뷰를 보시고, 이 영화가 조금이라도 더 끌리게 되셨다면, 용기내서 3시간의 가부좌와 1시간의 종장에 펼쳐지는 아주 미세하지만 소중한 떨림을 경험해보시길 추천 드려봅니다. 필요하시다면, 제가 본 리뷰의 댓글과 인스타그램 댓글로 A/S 철저하게 해드리겠습니다. (물론 바라실 분이 계시리란 기대는 안 하지만, 있으시다면 해드릴 자신 있는 그만큼 가치 있는 영화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본 리뷰는, 세상의 모든 정보를 담고 있는 안테나곰(http://www.antennagom.com/)의 형제사이트인 세상의 모든 즐거움을 담아나갈 호드_덕/호떡닷컴(http://hodduck.com/)에 최초로 쓰여진 영화 리뷰입니다. (본 사이트가 솔데의 게으름으로 방치될 시) 향후 안테나곰 페이지의 '솔데의 오롯이 영화를 비추다' 컨텐츠로 옮겨갈 수 있습니다.
부족한 리뷰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곧 찾아올 2020년에는 보다 즐겁고 보다 행복한 한 해 마주 하시길 바라여 봅니다.
감사합니다.